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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한계령 연가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 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 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운명이...

  그대와 나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이 묶였으면......

 

 

  '못 잊을 사람'아.

 

  나는 그대와 얽히고설켜

  달과 지구처럼

  서로 영원히 벗어나지 못 할

  지독한 운명으로 엮이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이

 

  폭설인들

  폭우인들

  우박인들

  천둥인들

  세상 그 어느 것인들,

 

  무어가 두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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